음악으로 Wakamatsu 부활을 !!

(계승되어 온 와카마츠 재즈의 전통)

PICK UP 若松を興す 특집

九州で初めて誕生したジャズバンド(1916年当時)

규슈에서 처음 탄생한 재즈 밴드(1916년 당시)

지금의 JR 지쿠호 본선의 기점이자 종점인 와카마츠 역에서 번영을 누렸던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플랫폼에 흐르는 재즈 BGM, 무인 개찰구를 나오면 오른쪽 벽면에 ‘와카마츠 재즈의 역사’를 소개하는 대형 패널이 있다. 석탄 경기로 호황을 누렸던 시절, 중국 상해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음악인 재즈가 이 도시에서도 연주되었다. 골드 러시와 비슷한 석탄 경기 속에서 성장한 ‘와카마츠 문화’. 재즈에 매료된 젊은이들도 그 주역의 일익을 담당했다.

 

‘석탄’을 통해 성장한 와카마츠 문화와 재즈

와카마츠는 석탄과 함께 번영하였다. 1891년 와카마츠-노가타 간 철도가 개통된 이후 지쿠호 탄전과 연결된 와카마츠는 일본 최대의 석탄 선적항으로 변모했다. 1910년대 초에는 일본 국내 총 채굴량 2만여 톤의 절반 이상이 지쿠호 탄전에서 채굴되었고, 그중 80%가 와카마츠항으로부터 국내외로 반출되었다. 당시 와카마츠는 일본 최대 규모의 석탄 취급 도시였다.

국내는 물론 인근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많은 석탄 노동자가 유입되어 시가지 인구가 3만 명으로 불어난 와카마츠는 북부 큐슈의 경제 중심지이자 문화 도시로서 활기를 띠었다. 도시의 중심 지역(현재의 혼마치 주변)에는 극장과 영화관이 즐비했고, 쇼와 초기에는 일류 음악가들의 공연도 열렸던 극장(아사히자, 마이니치칸)과 영화관(쇼치쿠칸, 기라쿠칸, 와카마츠 클럽, 슈에이)이 인기를 끌었다.

또한, 에비스 신사에서는 오사카 스모의 와카마츠 대회가 열렸고, 도이초와 하쿠산에는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여 예술촌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도선 선착장 근처에는 미츠비시 석탄, 목조 고딕 양식의 석탄 상사, 붉은 벽돌 건물인 증기선 회사, 수상 경찰서 건물이 늘어서 있고, 부두에는 기선 돛대들이 즐비하고 선상에서는 석탄을 연료로 한 풍로로부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와카마츠항만의 풍경이었다.

이러한 와카마츠 특유의 풍경 속에서 성장한 와카마츠의 재즈 문화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메이지시대 중기, 상해와의 석탄 항로를 통해 유입된 새로운 재즈 음악은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했고, 1916년에는 큐슈 최초의 재즈 악단인 ‘와카마츠 펄 재즈 밴드’가 탄생했다. 그들의 연주 활동은 후쿠오카, 오이타, 야마구치로 퍼져나가 재즈 진흥의 물결은 탄광지대인 지쿠호 지역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상해 조계’에서 시작된 아시아의 재즈 문화

재즈는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이 융합한 음악으로서 19세기 중엽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되어 순식간에 시카고, 뉴욕 등 대도시로 전파되어 즉흥성과 스윙이 만들어내는 재즈의 세계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그런 재즈가 중국 상해에 전해진 것은 1920~30년대 무렵, ‘조계(租界)라 불리는 영-미-불의 외국인 거주 지역이었다. 서양인과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던 당시 상해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이국적인 근대 도시이자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중국 최대의 첨단 도시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일류 뮤지션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상해로 몰려들게 되어, 일본과 필리핀 등 인근 아시아 지역의 뮤지션들도 ‘본고장 미국의 연주 기술과 감각을 배우기 위해’ 상해를 향했고 귀국 후 각자 재즈 악단을 창단했다.

당시 조선에서도 상해 재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1929년에는 조선 최초의 재즈 악단인 ‘코리아 재즈 밴드’가 탄생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공연이 있을 때마다 세련된 음색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고 하는 한편 재즈의 열기에 매료된 당시 세태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군화의 발소리가 다가오고 있는 시대 상황 속에서 ‘상해 조계’라는 치외법권 지역에서 육성된 재즈는 적대적인 음악으로 외면받으면서도 최첨단 유행 음악으로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의 확대와 함께 국내에서는 영・미의 음악이 금지되고 ‘재즈 연주-감상 금지령’이 발령되면서 아시아에서 재즈는 풍전등화가 되었고, 밴드 멤버의 징병 등으로 인해 와카마츠 재즈의 역사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재즈를 테마로 한 내고장 만들기를 와카마츠로부터 발신

전후 GHQ(연합군 총사령부)의 주둔이 일본의 재즈 재생에 힘을 실어주었다. 일본 경제가 부흥에서 호경기로 접어들면서 지방 도시인 코쿠라에서도 화려한 네온 거리가 부활하고 재즈 음악의 인기가 높아졌다. 그러나 이후의 불황과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전환이 진전되면서 70년대에는 치쿠호 탄전의 폐광이 잇따르고 와카마츠의 활기도 급속히 잃어감과 동시에 재즈는 과거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끊어졌던 와카마츠의 재즈를 부활시켜 내고장 부활을 목표로  ‘와카마츠에서 음악을 듣는 모임’이 1991년에 발족했다, 공무원, 학생 등이 모인 이 모임의 활동은 지역 와카마츠뿐만 아니라 키타큐슈의 음악계를 견인하였다.

1993년 ‘자원봉사 내고장 부흥 밴드’를 결성, 95년에는 한신 대지진 모금 거리 라이브를 지역 상점가와 그린파크에서 개최했다. 그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등 자선활동을 통한 재즈 진흥에 주력하는 한편, 지역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재즈 음악 수업을 실시하는 한편 97년에는 와카마츠 시민회관에서 ‘셀렉트 인 와카마츠’를 개최, 이는 이후 매년 개최하는 ‘와카마츠 철인 재즈’로 발전해 갔다.

또한, 양로원이나 장애인 시설에서의 연주, 지역 축제 행사나 각지의 내고장 만들기 행사 참가를 통해 재즈 음악의 매력을 알리는 활동은 지역 행정기관이나 관계 단체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2008년에는 국토교통성 주최의 내고장 만들기 전국 교류 회의에서 ‘내고장 만들기 국토교통장관상’을 수상하여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었다.

 

올해도 10월 초에 ‘와카마츠 철인 재즈’를 개최

와카마츠의 재즈 문화 부흥의 공로자인 와다 히로시 씨의 사후에도 그의 뜻을 이어받은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1997년 첫 개최 이후 올해로 28회째를 맞이하는 ‘와카마츠 철인 재즈’는 큐슈 재즈의 발상지인 와카마츠의 대표적인 음악 이벤트이자 키타큐슈 뮤직 프롬나드의 간판 이벤트이기도 하다.

철인 재즈에는 매회 유명 재즈 뮤지션이 출연하는데, 이번에는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북유럽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샤흐라노프를 비롯해 철인 재즈에 첫 출연하는 듀오, 서일본을 거점으로 활약 중인 베이시스트, 베테랑 테너 색소폰 연주자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오프닝 공연으로 등장하는 ‘큐슈 공업대학 썬더 보이즈 재즈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기대된다. 내고장 부흥 콘서트 ‘와카마츠 철인 재즈’는 10월 5일(토) 오후 6시 와카마츠 시민회관 대 홀에서 개최된다.

 

 

참고 자료:

  • ‘중 도시’, 히노 아시헤이 저, 히노 아시헤이 선집 제8권, 토쿄 소겐샤, 1955년 6월 30일
  • ‘와카마츠의 옛날이야기’, 요시노 토시아키 저, 니시니혼신문사, 1996년 11월
  • 재즈의 시작 토미자와 에이치 『재즈의 시작』, https://jp.yamaha.com/sp/myujin/tag/
  • 1930년대의 상해 재즈 열풍, 조선의 젊은이를 사로잡다」, 동아일보 2019년 5월.